커튼을 타고 햇살이 나부꼈다. 거실의 너른 창에 걸어둔 레이스 커튼은 빛을 막는 데는 쓰임새가 없었으나 그 너머의 햇살이 한 번 걸러지며 들어오는 빛이 좋았다. 태지언은 거실 가운데 서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때로는 커튼을 모두 걷기도 했다. 그럼 가릴 것 없는 창으로 햇살이 은행잎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때마다 태지언은 한껏 일광욕을 즐겼다. 그건 낯선 일이었다. 그가 있던 교단은 늘 빛 하나 들지 않는 곳이었고, 악마의 장난감 상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교단 내에서도 빛이 드는 곳이 있었으나 그곳에 오래 있진 못했다. 신을 찾는 신도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은 탓이다. 태지언은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을 떠올리다가 의식적으로 끊어냈다.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인님은, 그 악마는, 율리시즈는 태지언을 깔끔히 놓아줬다. 계약 기간은 1년. 짧은 무대에서 제 역할에 다 할 것. 반투명한 양피지로 위에 써내렸던 계약 조건은 간단했다. 자유롭게, 사람으로 살게 해달라는게 전부였다. 태지언은 그걸 위해 무대에 올랐고, 무대는 성공적으로 마쳐졌다. 태지언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비록 참가자들이 서로를 죽고 죽여야 했으며, 끔찍한 것을 마주했고,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느꼈을테지만 모두 나갔으니 성공적이었다. 악마 역시 일차적으로는 만족한 모양새였다. 그 자신의 기분이 좋았던 것도 한 몫했을 터였다. 물론, 뒤돌아봐선 안될 곳에서 태지언 자신의 목소리가 사용될 줄은 몰랐지만.

 

 태지언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들이 그곳에서 떠나길 바랐다. 그들이 무사하길 바랐다. 그들이 안도하길 바랐다.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비일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으면서도 태지언은 그렇게 바랐다. 그러니까, T였을 적에 그랬다.

 

 태지언은 더 이상 T가 아니다. Try, Talk, Treatment, Task, Terrible, Test…. 그 밖의 수많은 T 중에 그 무엇도 아니게 되었다. 남은 T는 태지언의 이름에 대한 머리글자뿐이다. 그걸 위해 태지언은 모든 걸 해왔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부탁한 물건을 건네주고, 약간의 힌트를 내어주고, 그들의 손에 죽기도 하는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들보다도 더 끔찍한 일을 겪어와서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태지언에게는 그랬다.

 

 그는 무대 위에 있던 일들을 가만히 떠올리다가 손을 꽉 쥐었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탓에 손톱이 손바닥 안을 파고들었다. 손을 펴자 약간의 자국이 남았다. 예전 같았다면 옥체가 상했다며 수선을 떨 이들이 곁에 있었겠으나 이제는 없다. 태지언은 그게 좋았다.

 

 햇살을 보다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가면 샐러드와 사과 한쪽과 우유와 토스트가 있었다. 그 곁에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 하나가 남아 있다. 태지언은 메모를 떼어 읽었다. 늦게까지 자는 것 같아 깨우지 않고 나간다. 아침은 이걸 먹고, 점심은 냉장고 안에 두었으니 챙겨 먹으렴. 저녁은 같이 먹자. 단정한 필체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조경학. 태지언은 우연히(정말 우연이었을까?) 무대에서 빠져나와 세상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와 마주쳤다. 조경학은 난데없이 제 앞에 나타난 청년을 보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벼락에 맞은 것처럼 놀라 돌아보았고,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한 아들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태지언은 무대가 꾸려지길 기다리면서 그 악마에게 네 아버지라며 받은 사진과 신상명세를 받았었다지만 조경학은 그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떠허게 알아보았을까? 태지언은 그게 궁금했으나 저를 끌어안고 하느님 맙소사를 외치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제 아버지에게 차마 묻지 못했다. 그의 그러한 슬픔과 감격에도 동조하지 못했다. 네가 죽은 줄만 알았다고 말하는 것엔 죽지 않았다고 겨우 대답할 따름이었으나, 그건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가 튀어나오는 반사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태지언은 저를 보고 그처럼 격렬하게 슬픔을 내비치는 사람을 본 바가 없다. 그를 앞에 뒀던 인간들은 애정을 갈구하고, 욕망을 갈구하고, 때로는 소망을 갈구했다. 때로는 신에게 당신 탓이라며 화풀이를 해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나, 개 중에 ‘태지언’을 향한 슬픔은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태월’의 것이었으므로.

 

 태지언은 그 후로 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간 조경학은 태지언을 살피고, 염려하고, 존재하지 않는 신분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으나 태지언은 막연히 잘 될 거라고 여겼다. 악마와의 계약이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부당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서로를 죽고 죽이고 고생을 한 것은 참가자인데, 왜 이런 편의를 받는 건 태지언이냐고. 물론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태지언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그것뿐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태지언은 멍하니 생각하다가 식탁 앞에 앉아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약간 비리고 고소한 맛이 혀 끝에 닿았다. 샐러드를 뒤적이다가 사과를 집는다. 나오긴 했으되 아직 사람다운 삶은 잘 알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었다. 태지언은 갈 곳 잃은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좋지. 속엣말만 맴돈다. 말 없는 입술이 사과를 베어 물었다. 와삭.




 총각김치가 아삭거렸다. 완전히 익진 않았는지 약간 아린 맛이 남아 있었다. 풋내나는 총각김치를 우물거리면서 태지언은 수저를 놀렸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조밥을 뜨며 수저가 놋그릇에 닿아 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지언이 조금 더 조심히 수저를 놀리고, 젓가락을 들어 나물 반찬을 집는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제 아버지가 놀라 묻던 것을 떠올리며 태지언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신분회복도 다 되지 않았으면서 여행을, 그것도 혼자 간다고 하니 보호자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테다. 물론 태지언은 장성한 아들이고, 심지어 20대 중반이기까지 했지만 재회한지 오래 되지 않은 아들이 걱정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태지언이 그를 설득하기까지는 제법 실랑이를 해야 했다. 지리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애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가느냐, 나와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경학과 그러므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주장하는 태지언 사이에는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결국, 진 것은 조경학이었다. 그가 일 때문에 바빴던 것도 있었다. 신분이 다 회복되지 않았으니 자신 명의의 핸드폰을 쥐여주며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버지를 떠올리자니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물론 그의 말대로 태지언은 아무것도 몰랐다. 지리도 알지 못했고, 사람도 몰랐다. 이러니 밖에 내보내기가 불안할 수밖에. 그러나 태지언은 홀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야 완전히 떠나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지언은 전주로 내려왔다. 아버지 명의의 카드와 아버지 명의의 핸드폰을 쥐고, 옷가지와 몇 가지 짐이 든 가방 하나를 덜렁 들고서.

 

 태지언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뒤에 거리로 나섰다. 성수기가 아닌 탓인지 이따금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몇 오가는 걸 제외하면 거리는 한산했다. 태지언은 그 길을 천천히 따라 걸었다. 풍경은 퍽 예뻤다. 특히 예뻤던 곳은 숙소 앞이었다. 정원이 잘 꾸며져 있었는데, 한쪽에는 때늦은 프리지아 모종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게 프리지아라는 걸 숙소주인과의 대화로 알았다. 숙소주인은 서울에 살다가 부모님이 전주한옥마을에서 운영하던 숙소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정원을 꾸미고 정을 붙이다 보니 진심으로 운영하게 되었다며 믹스커피를 내밀었더란다. 태지언은 수더분하게 이어지는 주인의 말에 이따금 대답하고, 이따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좋은 청자였다. 손에 든 종이컵 속의 커피가 다 식을 때쯤에야 주인의 이야기는 끝났다. 정확히는 새로운 숙박객이 와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 식은 후에야 마셔본 믹스커피는 지나치게 달았다. 

 

 태지언은 거리를 걷다가 경기전에 불쑥 발을 들였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그 오래된 전각이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들어섰다. 그리 넓은 곳이 아니었으므로 빙빙 돌던 그는 오래지 않아 어진 박물관까지 닿았다. 모셔진 어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태지언은 궁금해졌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남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왕들은 모두 그 이름이 남았다. 그럼 그 밖의, 그들을 모셨던 이들의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태지언은 신이었던 시절, 태월을 부르짖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광기가 머리를 몽롱하게 만들었던 탓도 있었고, 좋지 않은 기억을 뇌가 일부러 받아들이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소사 되어 재로 변했다. 그들의 신원을 밝히려면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 그 누구도 태지언이 거기에 없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태월은 살아있는 신이었되 살아있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태지언은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사람으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든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흔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그 모두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태지언은 시작부터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태월님, 사람이 되려 하지 마세요.’

 

 어머니, 교주, 태신희가 언젠가 그렇게 속삭였다. 교단 내에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한 말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아니, 노인들을 보고 있었던가? 기억은 흐렸으니 잘 알 수 없었다. 태신희는 광기에 미쳐버려서 아들을 신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인간임을 부정했다. 태지언은 그렇게 신이 되었다. 사람임을, 인간성을 버리면서.


 태지언은 어진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교주님, 당신은 틀렸습니다. 나는 결국 사람이 되었어요.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것이 후련하면서도 태지언은 못내 서러웠다. 과거는 그립지 않았으나, …때때로 불쑥 찾아드는 기억이 있었으니까.

 

 태지언은 천천히 걸음을 돌려 박물관에서 빠져나왔다. 눈가를 문지르는 소맷부리가 축축했다. 태지언은 이제 혼자가 됐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혼자였다. 신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되었다. 아직 온전히 신분회복이 되지는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태지언은 충분히 기뻤다. 기쁘고 슬퍼서, 서러워서,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지이잉. 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보면 액정에 ‘아버지’라고 적혀 있었다. 태지언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네. 경기전에 왔습니다. …아뇨, 아무것도요. 괜찮아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유독 높아 보였다. 태지언은 눈을 깜박이다가 다시 한 번 눈가를 문질렀다가, 조금 웃었다.

 

 “…금방 돌아가겠습니다.”

 

 할 얘기가 많아요. 전화가 끊어지고, 태지언은 천천히 걷는다. 괜찮을 것이다. 다 나아질 것이다. 누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라? 그건 결국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태지언은 이제, 괜찮아질 것이었다. 앞으로 더, 조금 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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