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다체를 씁니다. 텍스트 다수. 짧습니다.

 

 

21년 8월…. 난데없이 커뮤가 열고 싶었다.

난 1년에 한 번은 커뮤를 여는 편이고, 8월쯤에 그 쿨이 찬 것이다. 하지만 커뮤가 막연히 열고 싶다 뿐이지 어떤 커뮤를 열지 정하진 못해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마침 그 다음달인 9월에 추석연휴가 있으니 추석연휴에 화끈하게 즐기고 끝낼 짧은 커뮤를 운영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연 것이 〈Don't open the door.〉였다.

 

홍보지 이미지는 아몬님

 

〈Don't open the door.〉, 그러니까 돈도어는 어느날 랜덤하게 악마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저택에 갇히고, 그 속에서 서로를 죽이고, 나갈 문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다. 상호살해가 메인 컨텐츠라서 추석연휴 제삿상에 자캐를 올려보자는 농담을 해가며 홍보를 했고, 무사히 열렸다. 모인 캐릭터는 내 캐릭터인 MPC를 제외하고 16명. 다들 멋진 캐릭터였고 비설도 재밌었기 때문에 정말 재밌게 운영했고 뛰었다! …그렇다. 나는 엔딩이 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호도 몰랐었다.

 

이쯤에서 나의 현 앤캐이자 구 관캐인 정선우씨를 소개한다.

정선우씨는 32살, 재벌3세에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인데 러닝 내내 가면과 가명을 쓰는 커뮤 특성 상 흰 천을 뒤집어쓰고 시에라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이 흰 천이 좀 캐스퍼 같았지만 그 점도 귀엽다고 본다.)

 

그리고 내 캐는 T라는 가명과 눈만 웃는 가면을 쓴, 과거 사이비종교의 살아있는 신으로 모셔졌다는 과한 비설을 가진 친구였다. 이름은 태지언. 근데 얘 이름은 지금 중요하진 않고….

 

시에라(정선우)와 T(태지언)의 첫 만남은 평범했다. T는 손님인 멤버캐릭터들을 보좌하며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했는데, 시에라와의 첫 대화도 그런 식이었다. 너도 주인의 취향 중 하나냐며 말을 걸어서 시작한 대화는 도중에 시에라가 가위를 가져다달라는 것으로 이어진다.(이 과정에서 장발인 T에게 머리를 자르거나 묶으라는 요청을 해서 T가 포니테일을 했는데, 이걸 계기로 T는 이후로도 계속 포니테일을 유지하게 된다.)

 

가위를 가져다 준 후에는 시에라가 T의 가면을 벗겼는데, 이로써 시에라가 러닝 중 유일하게 T의 맨얼굴을 보게 되었다! 정선우는 T의 맨얼굴을 보고서 T를 T라고 부르지 않고 “겨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쯤부터 X됐다고 느꼈어야 했다……. 특별한 호칭 따위에 약한 인간이면서 왜 생각지 못했을까…………. 하지만 나는 이때도 ‘허억 시에라가 겨울이라고 불러주네 개짱이다 우리 친해질 수 있나바 이대로 친구하고 싶어’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물론 T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타코나 토스트 따위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농담같은 별명이라…. 근데 겨울은 좀 달랐다. 왜냐면 T의 설정이 죽은 겨울 같은 미인이라는 과한 설정이 붙어 있기 때문에….

 

어쨌든 T를 겨울이라고 부르는 시에라와 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생각하면 적지도 않았다. 그 과정에서 시에라에게 비설을 털었다…. 그렇다. 그 사이비 종교의 살아있는 신이라는 과한 비설말이다. 로그도 쳤다. 이때 치지 않으면 내내 못칠 것 같았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나는 어쨌든 이왕 있는 비설을 털고 싶었고, MPC의 비설을 털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ㅋㅋ) 짧은 로그까지 쳐가며 비설을 턴 것이다. 솔직히 로그라고 할 것도 없었다. 너무 타래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이미지 한 장에 구구절절 적은 것 뿐이었으니까.

 

시에라와는 그렇게 착실히 대화를 하고, 마지막날에 이르렀다. 엔딩 부분에서 연출이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저승에서 빠져나갈 때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가진 것처럼, 우리 친구들도 뒤돌아봐선 안된다는 금기를 가지고 문으로 향했다. 악마는 수도 없이 유혹했다. 천사가 돌아오라고 말하기도 계속 말을 건네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T의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싶다고 뒤돌아보라는 뉘앙스로 말까지 했다. 물론 이건 진짜 T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들은 시에라가……….

 

네가 나를 찾아와. 내 이름을 알잖아.

 

라고 말한 것이다……….(미친건가… 다시 보는데도 설렌다.……) 그의 말대로 T는 모든 캐릭터들의 비설과 신상명세를 알고 있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근데 나는 여기서 어? 하고 약간 덜컹했다. 물론 이쯤에도 정신 못차리고 ‘허얼 엔딩나고 애프터 할 빌미 주네???’ 따위의 생각이나 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지금 이 관통후기를 쓰고 있지만 어디서 어떻게 치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정선우씨가 좋았다…………………. 뭐…, 자각을 한 계기는 따로 있기야 했지만.

 

어쨌든 나는 무사히 엔딩을 냈고, 엔딩 후 멤버캐들의 끝내주는 썰들을 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애프터도 시작했다. 봇계 타임라인에서 다시 만나는 정선우씨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자각을 한 계기는 터무니 없다.

타임라인에서 갑자기 TRPG 얘기가 나왔었고, 얘기를 하다보니 내 최애 CoC 시나리오인 1999 Replay가 가고 싶었다. 그래서 타임라인에서 아무나 나랑 연말에 19리플(=1999 Replay)을 가자고 구인하고 있었는데 모란님(=시에라, 정선우씨 오너님이자 현 앤오님)이 같이 가주신다고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때도 나는 별 생각 없었다. 정말로! 진짜로! 별 생각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흑심은 없었다. 진짜다. 하지만 이후에 생겼다. 왜냐면………. 그로부터 하루인가 이틀 뒤, 꿈에 정선우씨가 나온 것이다…………. 꿈에 나올 정도면 이미 갔다.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심란하더라….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나… 정선우씨 사랑하나봐……….” 정말 터무니없는 자각계기였다…….

 

자각하고 나서 괴로워하면서 탐라에서 고소한다고 하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시온님이랑 대화하다가 정선우씨가 관캐라고 울면서 디엠 뛰쳐들어간 적도 있고, 관통타로도(ㅋㅋ) 봤다…………….

 

정말… 나름대로 힘냈다. 애프터도 열심히 하고 CoC 시나리오도 2개나 다녀왔다. (Under the chandelier light랑 마지막 무화과 개짱 갓시나리오니까 한번쯤 앤관캐와 다녀오세요. 후회없습니다.)

 

근데 애프터 하면서 정말 미치겠더라….

 

태지언은 신으로 키워지며 폭력과 강요를 사랑과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그 탓에 사랑이란 그저 끔찍한 것으로 여겨졌다. 정선우씨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도 속이 울렁울렁 했을 정도로. 하지만 갈수록 태지언이 정선우씨를 좋아하는 건 명확했다. 워낙 솔직한 성격이라 좋아한다고도 수도 없이 말했고, 같이 있으면 기뻐했고, …음. 솔직히 둘이 사귀기 전부터 온갖 걸 다 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렇게 된 건 역시 정선우 씨가 잘못한 것 같다. (응?)

 

정선우 : 지언아, 네가 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태지언 : 네. 좋아하면 안됩니까?

정선우 : 아니. 좋아하면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냥…. 네가 날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궁금해서 그렇지.

태지언 : 얼마나…요. 정선우씨는 어떻습니까?

정선우 :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전부 가능할 것 같아. 그렇게까지 안 좋아하게 될 수도 있나요? 하지는 마. 너무 좋아해서 생길 수 있는 반작용 같은 거니까. 좋아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잖아?

태지언 : 그렇습니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기대의 반작용과 비슷한 거로군요.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 것처럼,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지 않게 될 수도 있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바라는 게 또 생겼네요.

정선우 : 계속 바라고 원해도 돼. 원하는게 생기면 가져. 의심하지 마. 너는 뭔가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니까. 뭔가를 원하는 널 보면 실망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 너와 나에게 둘 다 좋은 방법이겠지.

태지언 : 그렇습니까. 계속 좋은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요. 그걸 바라니까.

정선우 : 괜찮아. 좋은 방향이어도 그렇고 좋지 않은 방향이어도 내가 옆에서 도와줄테니까. 나는 네가 나쁜 일을 해도 좋아할 거야. 어쩌면 좋은 일을 할 때보다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는데.

태지언 : …보통은 좋은 일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정말 나쁜 일을 하면 어쩌시려고요.

정선우 : 좋은 일을 하라고 권하긴 할텐데… 정말로 그런 게 나한테 중요할 것 같아? 지언아. 나는… 네가 다 태우고 나와서 좋아. 그래서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

 

정선우 : 너는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태지언 : 정선우 씨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정선우 : 지언아. 발이 바닥에 안 닿는 물에 들어가본 적 있어? 언제 바닥에서 발이 떨어질지 몰라. 그런 느낌이야.

 

태지언 : 정선우 씨와 대화하면… 제가 아주 괜찮은 사람인 것만 같아요.

정선우 : 이제 알았어? 지언아, 너는 아주 많이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네 생각보다 강하고 다정해서… 누구도 그걸 해치지 못했으면 싶어.

 

………솔직히 이런 대화를 나누면 사람이 반쯤 미쳐버리지 않을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태지언 앞에서는 다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는데 정말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기가 마음대로 하게 두지 말라고까지 말하니까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고 다 주고 싶었다…. 게다가 이런 대화도 했다.

 

태지언 : 선우씨가 태지언만의 정선우였으면 좋겠어요.

정선우 : 네가 원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어. 지언아, 네가 가져야지.

태지언 : 하지만… 사람은 가질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정선우 : 가질 수 있고 없고보다는 네가 원하는지 아닌지가 궁금해, 나는.

태지언 : 저는, 원해요.

정선우 : 잘 생각해. 정말로 가지면 너는 어디에도 못 가니까.

태지언 : 전 다른 곳은 갈 생각이 없는데요.

정선우 : 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질지도 몰라. 내가 원하게 되면.

태지언 : 그래도 좋다면요?

정선우 : 내가 너무 무거운 생각을 하고 있나?

태지언 : 선우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저는 몰라요. 그렇지만… 저는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정선우 : …너한테 고백하고 싶어.

태지언 : 해주세요. 안 되나요?

정선우 : 안 돼. …겁이 나니까.

태지언 : 어째서요?

정선우 : 발이 닿지 않을 것 같아.

태지언 : 너무 깊어서요?

정선우 : 그래. 너무 깊어서.

태지언 : 그럼 멈추실 건가요?

정선우 : 널 기다려야 해. 나는.

 

“너한테 고백하고 싶어.” ← 여기서 사람이 미쳐버리겠더라고…………….

이쯤에서 고록을 파자고 마음 먹었다. 아니 솔직히 고록을 팔 마음은 있었다. 다만 연말에 19리플을 가기로 했으니까 그걸 다녀와서 드려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대사를 들어버리고 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대화를 한 역극을 마무리 짓고 나서 돈도어 AU 이벤트를 했는데, 이걸 하면서 고록을 파? 말아? 하고 엄청 고민했다. 고록을 파면 언제 드릴 것이며, 드리고 나서 차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우왕좌왕 갈팡질팡 얼레벌레……….

 

그리고 AU 이벤트가 끝나는 날. 고록을 다 썼다…. 엔딩 나고 바로 드려야지! 하는 맘으로 완성했는데 정작 엔딩내고 나니까 차마 못 드리겠어서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나 어떡해 하면서 그냥 밑에 쓴, 이거 고록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의 사족을 지우고 그냥 일반 로그처럼 드릴까?! 하는 생각마저 한 것이다…. 그걸 말려준 룽님과 물감님에게 감사하는 맘을 전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날 바로 드렸고, 성사 되었다는 엔딩이 났다!

오늘은 21년 12월 11일 토요일…. 선우지언이 4일째………… 나 정선우 씨 너무 사랑해………. 이 모든 영광을 정선우 씨와 모란님께 바칩니다. 솔직히 이거 관통후기보다는 구구절절 고해문인듯?

 

여튼 정선우씨는 개짱이고요 저는 정선우 씨를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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