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였고, 가진 것을 빼앗았으며, 욕을 하고 소리쳤다. 전쟁터? 아니. 그마저도 되지 못했다. 그저 난장판이었다. 이원은 그걸 보고 있었다. 이건 꿈이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시 꿈꾸는 것이다. 이원은 자신이 이곳에서 벌써 며칠도 전에 벗어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그걸 안다고 해서 이 꿈에서 깨어나진 못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잘된 일이었다. 저렇게 모양 빠지는 싸움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제 몫의 파편은 이미 가지고 있었고, 잃어버린 물건도 없었으니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이원은 그저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이 꿈에서 깨고 나면 자신은 평소와 같이 씻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서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흐트러짐 없는 일상. 그게 자신이 바라는 일이었다. 특별한 굴곡도 없이 무료한 시간. 하지만 그걸 누구보다도 바라기도 했다. 이원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있었고, 그걸 실행해 방해꾼을 치워버릴 때까지 오랜 기간 바쁘게 뛰어왔다. 이제는 모든 게 끝났으니 그 토록이나 바라던 휴식을 즐기며 여유롭게 물려받을 유산을 집어삼키면 되었다.


 정말 그걸로 끝?


 이원은 수라장이자 난장판인 곳을 응시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엉망으로 뒤엉켰고, 자신을 악몽이라 주장하는 괴이한 남자가 그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저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악몽 속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유달리 침착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그건 그 누구도 이원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원은 흔들림 없이 그저 서 있었다. 그리고 이원을 흔든 건 그들이 아닌 단 한사람이었다.


 ‘내 여기서 이리도 익숙한 동생 분을 만날 줄 꿈에도 몰랐네! 반가워요, 굿이브닝?’


 맨 처음 건네 온 인사를 기억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사람은 예상보다도 훨씬 강하게 이원을 흔들어놓았다. 아마 정작 그 본인은 알지 못할 것이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흔들렸었다. 아니, 맨 처음에 흔들린 까닭은 그저 놀람이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꿈속에까지 그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놀랐으나, 사실 그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사람이 다름 아닌 도진인 탓도 있었다. 선우도진. 죽은 이원의 형인 이혁의 친구였던 그 남자는 아주 기묘한 사람이었고, 종종 이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마 그래서 관심이 생겼고, 그걸 부정하고 싶어 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원은 자신이 어느새 저 수라장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익숙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사라질 리는 없을 텐데. 아니, 혹은 이게 그때를 떠올리는 꿈이라서, 진짜 꿈이라서 나타나지 않은 걸까? 이건 그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꿈이었다. 이원은 이내 고개를 내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 꿈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저쪽에 있는 저 커다란 거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됐다. 저걸 빠져나가면 현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은 난장판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먼저 들어갔을까? 아니, 애초에 이 꿈에는 없을지도 모르지. 이곳에 오지 않는 게 좋다. 다시 악몽에게 그의 트라우마가 농락당할 바에야.


 꿈에서 완전히 미련을 버린 이원은 거울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느리게 눈을 뜨자 바로 앞에 잠든 얼굴이 보였다. 잠에 취해 멍한 머리로 그 얼굴을 응시하던 이원은 한 박자 늦게 이곳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이 남자는 연인이었다. 연인. 애인. 사귀는 사람. 주이원이 좋아하는 남자. 선우도진.


 지난 밤, 이원은 도진의 집에 왔었다. 자연스레 시작한 데이트가 밤늦게까지 이어져 그의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데이트라고 해봤자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다. 퇴근 하고 밥을 먹고 찬찬히 이야기를 하다가 온게 전부였다. 싱거울 정도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일이라고는 그저 입맞춤 몇 번. 한 침대에 눕는다고 해서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이원은 특별히 경계하거나 의식하진 않았으나 혹 그런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저도 도진도 아직 20대, 한창 때의 남자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사랑한다 고백한 연인을 만지는 일을 싫어할 리가.


 하지만 이렇게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도진은 늘 쾌활했고 발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수가 많았으며 표정이 다양해서 잠든 얼굴처럼 고요한 얼굴을 보기란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금세 정신이 팔려 찬찬히 지켜보기도 어려웠고. 해서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본 적이 없었다. 이원은 가만히 도진의 얼굴을 살폈다. 내리감은 눈, 쭉 뻗은 코, 다물린 입술은 조화롭게 모양을 잡고 배치되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잘생겼다는 말이 나왔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듯 살펴보던 이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귀로 가 닿았다. 귀를 따라 주렁주렁 매달린 피어싱들이 줄지어 보이는 것을 그저 빤히 응시했다.


 “…자는 사람을 막 덮치는 취미가 있었어, 동생?”

 “없습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던 건지 이원의 손이 귀에 닿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이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진은 어느새 웃는 얼굴로 이원을 보고 있었다. 언제 깬 거지? 방금 전까지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시선을 느끼고도 자는 척을 했던 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이원이 빤히 응시하자 이원을 끌어안고 잤던 도진이 조금 더 그를 당겨 안았다.


 “그렇게 빤히 보고 말이야. 부끄러워서 눈도 못뜨겠더라아.”


 그러니까 결국은 아까 전부터 깨어있었단 말이었다. 이원은 물끄러미 도진을 보다가 마주 끌어안았다.


 “안됩니까? 내가 내 애인 얼굴 좀 보겠다는데. 닳는 것도 아니고.”

 “어머어머, 얘 좀 봐!”


 여성스런 말투로 하는 것에도 이원은 그저 그를 끌어안은 채로 그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5분만 더 자죠.”

 “졸려?”

 “조금만요.”


 깨워줄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등을 다독이는 걸 느끼며 이원은 눈을 감았다. 그래. 어차피 악몽은 미련도, 의미도 없다. 하지만 감사하고는 있었다. 계기가 되어준 것만은 분명하니까. 이원은 어울리지 않게 늦잠을 자기로 했다. 조금 더, 연인의 품에서.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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