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Irene


 Hello, 이레네. 잘 지내냐? 라고 하기엔 너무 새삼스럽지. 불과 며칠 전에도 만났었고 말이야. 그러니까 잘 지내는 걸 알면서 왜 이런 편지를 새삼스럽게 보내는 건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틀려? 오, 이레네. 이상한 표정 하지 말라구. 이걸 쓰면서도 네 표정 같은 거 훤히 다 보이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뭐, 너는 매일매일 아침마다 밤마다 점을 보는 걸로 시작하고 끝내니까 내 편지가 올 거라고 짐작쯤은 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정확하진 않더라도 소식이 있을 거다~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내가 이런 쓸데 없고 시덥잖은 편지를 쓰고 있는 건 역시 반성문을 쓰기 싫어서야. 내가 실수로 엄마가 아끼는 머글소설 몇권을 태워먹었거든. 왜 태웠냐고는 묻지 마….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그런거라구. 왜, 흔한 사고 있잖아? 그런거지. 엄마는 당연하겠지만 엄청 화내더라구. 아빠가 새로 사다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나이나 먹고서 또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을지도 몰라. 으, 그거 정말 끔찍하다고. 지난 번에 아빠 새 빗자루를 부러트렸을 때보다도 더 화를 냈다니까? 나 참. 나도 몇번 읽어봤지만 도저히 재밌는 걸 모르겠던데 엄마는 왜 그런 걸 좋아할까? 물론 재밌는 것도 있기야 했지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전혀 재미가 없었어. 내 미들네임을 따왔다는 그 소설말이야. 정말 재미없고, 지루하고. 근데 내 동생 앨리스는 또 그걸 엄청 좋아하더라니까? 이해나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냥 엄마가 좋아하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역시 여자들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반성문을 쓰게 됐는데, 으으. 반성문 너무 쓰기 싫어. 그래서 낙서나 하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또 걸려서 혼났지 뭐. 그래서 이번에는 반성문 쓰는 척 이 편지를 쓰고 있는거지! 뭐라도 쓰는 것 같으니까 엄마는 분명 반성문을 쓰는 줄 알거야. 반성문은… 그래. 이따가 대충 쓰지 뭐. 그래도 아까 슬쩍 훔쳐보니까 엄마가 트라이플을 만드는 것 같더라고! 엄마는 꼭 혼낸 뒤에 트라이플을 만들어주니까 말이야. 당밀퍼지도 있으면 좋을텐데. 엄마는 당밀퍼지나 트라이플 둘 중에 하나만 만들어주니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트라이플하니까 생각난 건데 내가 엄마표 트라이플 걸지 않았었냐? 그래서 엊그제 엄마한테 슬쩍 만들어서 너한테 가져가면 안되냐고 했는데 엄마는 좋다고 하더라고. 과연 우리 엄마. 아들인 나보다 내 친구 이레네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오늘도 나더러 엄청 화내면서 이레네 반만 닮으라고 하는 거 있지? 너랑 나랑 친구긴 하지만 엄청 다른데 어떻게 닮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구. 물론 엄마도 그걸 알고 있을테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닐거라고! 아빠는 말했지만. 몰라, 몰라. 여하간 그래서 트라이플을 만들어서 너한테 가져갈 생각이야. 오, 친구. 그러니까 너네 집에 쳐들어간다는 말을 이렇게 미리 해주는 거라고. 또 노라랑 워릭형이랑 아줌마랑 아저씨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 많이 만들어 갈거니까! 엄마한테 등짝을 얻어맞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해주겠지. 우리 엄마가 너랑 너네 가족들 다 좋아하잖아. 날 그정도로 좋아해주면 어디 덧나나 몰라. 참, 앨리스도 너 보고 싶다고 하더라. 걔도 엄마 닮아서 너 좋아하잖아. 물론 걔는 노라도 좋아하고 워릭형도 엄청 좋아하지만. ]



 거기까지 쓰고 멜은 들고 있던 깃펜을 툭 떨어트리고는 편지 위에 푹 엎드렸다. 반성문을 쓰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재미있긴 했지만 그래도 편지는 역시 적성에 맞지 않았다. 뭣보다 자신은 이런 글자 몇개 적은 편지 같은 게 아니라 직접 이레네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에.


 "멜! 반성문 안쓰니?"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에 멜은 엎드린 채로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비척비척 다시 몸을 일으켜 깃펜을 쥐었다. 댓발 튀어나온 입술을 도로 집어넣을 생각도 않고 양피지에 펜을 놀렸다. 이어진 편지의 내용은 시답잖은 소리들이었다. 결국 아빠가 새 빗자루를 샀다던가, 이번엔 부러트리지 말고 몰래 탈 생각이라던가. 여동생 몰래 장난을 쳐놨는데 그걸 언제 알아챌지 궁금하다던가. 반성문 같은 것은 정말 쓰기 싫고, 편지는 이럴 때만 쓰기가 재밌는 이유가 대체 뭘까? 멜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이러고 있는 것보다야 이레네에게 놀러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뒹굴고 노는 게 훨씬 재밌었지만.


 멜은 유독 이레네를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이레네는 멜의 유일무이한 친구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탓이다. 그렇다고 멜이 다른 친구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했다. 멜은 아주 마음을 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겉으로나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 애들 역시 멜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아주 얄팍하기 짝이 없어서 놀때는 즐겁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굳이 찾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마 그건 멜 뿐이 아니라 그 애들 역시 마찬가지 일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학이 절반쯤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호그와트로 돌아가면 다시 그 애들과 멜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쓸데 없고 생산성 없으며 의미없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테지. 멜은 그걸 알았고, 그래서 굳이 그 애들과 더 가까워질 생각이 없기도 했다. 말뿐인 친구를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아직 멜은 어렸고, 세상 물정을 몰랐지만 그런 얄팍한 관계를 진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친구라고 하면, 진짜 친구라는 건 결국 이레네 밖에 없었다. 에레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음. 놀러 가고 싶은데. 멜은 힐끔 제 엄마를 곁눈질 하며 편지의 마지막 문장 쓰고 점을 찍었다. 그리고는 마무리. 세상에서 제일 멋진 멜 에어 브론테. 가볍게 서명까지 하고서 양피지를 꼭꼭 접었다. 엄마는 앨리스와 조곤조곤 대화를 하느라 이쪽을 보지 않았다. 좋아. 멜은 집에서 키우는 부엉이 템프에게 고이 접은 편지를 매달아 주고는 소곤소곤 속삭였다. 이거 이레네한테 가져다 줘야 해. 이레네 알지? 내 친구. 템프가 고개를 까딱 기울이더니 푸드득 날아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템프를 지켜보던 멜은 그제야 새로운 종이를 꺼내 다시 깃펜을 잡았다. 편지는 썼으니까 이제 진짜 반성문을 쓸 차례였다. 에이, 정말.



[ 그래서 말인데, 내일 모레쯤 놀러갈게! 트라이플을 들고!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구!

 세상에서 제일 멋진 멜 에어 브론테.


 p.s. 내가 쓴 반성문이 엄마 맘에 들면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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