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다.

  너 올 건데 카드 쓰는 건 좀 어색한 기분이 들어. 받아보는 너도 그런 기분이려나? 아니면 너는 또 마냥 좋다고 할까? 그래, 어쩐지 후자일 것 같아. 좋다고 하면 기쁘겠지만 이 카드는 되도록 나 없는 데서 읽었으면 해. 민망하거든. 크리스마스 카드는 어릴 적에 써보고 처음 쓰는 거라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하지만 널 길들이기로 했으니 이 정도는 챙겨주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좀 이상한 방향인가? 이상해도 웃지 마. 이런 말을 해도 어쩐지 너는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엔 쉬게 될 테니 그날은 너를 만나게 되겠다. 목련 필 때 보기로 해놓고는 크리스마스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반가우니 됐어. 다만 네가 무리해서 오는 건 아닌가 걱정은 좀 되네. 뭐, 네가 알아서 어련히 잘 했겠냐만은.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 오면 어디를 가야 하나 좀 고민이야. 네가 멀리서 오는 만큼 잘 챙겨줘야 할 의무감 같은 게 생기는 기분이라서 말이지. 너는 어쩐지 이 추운 날 한강 둔치를 걸어도 좋다고 할 것 같지만, 나는 추운 게 싫으니까 따뜻한 장소를 예약할 거야. 어차피 네가 카드를 볼 때쯤에는 너랑 같이 다 돌아보고 난 후일 테니 굳이 어디인지 여기서 말하진 않을게.

  어쩐지 너한테는 나의 처음을 또 주게 되는 것 같다. 내 뽀뽀도 훔쳐 갔잖아. 크리스마스에 가족 외의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야. 굳이 친구를 만날 생각도 없었거든. 너는 워낙 친구가 많으니 크리스마스건 언제건 바빴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억울한 것도 같다.

  농담이야. 억울하긴 무슨. 집에 있는 게 훨씬 편하고 쾌적해. 크리스마스 같은 날 나돌아다니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어디에 있어? 남의 나라 성인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이상한 날인데 너도나도 죄다 거리로 나오는 건 좀 특이하다고 봐. 석가탄신일을 이렇게 챙기진 않잖아?

  그래, 할 말 없어서 그냥 헛소리 좀 해봤다. 너 지금 웃고 있지? 뻔하지. 안 웃고 있다면 좀 이상한데. 넌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웃을 것 같거든. 나는 별로 재미없는 인간이지만 이 카드는 좀 재미있었으면 싶다. 이런 건 나랑 좀 안 어울리냐? 그래도 견뎌. 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누나한테도 안 써주는 거야.

  같이 넣은 물건은 만년필이야. 너 이런 걸 잘 쓰는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마음에 들길 빌고 있어. 너 생각나서 산 거니까. 난 만년필 같은 거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쓴 적이 없어. 쓸 일도 없었고. 내가 안 쓰는 물건이지만 너한테는 어울리니까 잘 써주면 좋겠다. 반품은 안 받을거야.

  처음부터 편지를 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카드로 쓰니까 길어져서 갈음했어. 하지만 편지로 쓰니 이건 이것대로 그렇게 긴 것 같지도 않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받아.

  길진 않지만, 슬슬 마무리해야겠다. 이제 정말 할 말이 떨어졌거든.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성탄절 됐길 빌어.
  새해도 잘 보내.
  봄에 보자.


내 여우에게, 왕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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