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

 문득 올려다본 시계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케일럽이 늦게 들어오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가끔 느낌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느낌. 직감. 베델은 그런 비논리적인 것을 신뢰하진 않았으나 참고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그런 육감이 도움이 될 때가 분명히 있었으므로. 그리고 오늘 그 예감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이 자식 이거 또 어디서 다쳐서 안 들어오고 나도는 거 아냐?

 직감은 불안과 닮았다. 그래서 구분해내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불안이면 어떻고 직감이면 어때서? 상관없다고 여겨졌다. 만약 이게 불안이라 아무 일이 없다면 다행이었고, 직감이 맞아 정말로 그 남자가 아무 데서나 빌빌대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걱정이었다. 그래, 걱정. 타인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건 오랜만이라 베델은 종종 낯설었다. 아마 그만큼 그 남자가 의미 있게 된 것이리라.

 분침이 6에 가 닿았을 때, 베델은 결국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챙겨 걸치고 우산을 챙긴다. 그 길로 집을 나섰다. 바깥에 나오니 당연하게도 바람이 차가웠다. 어깨를 괜히 추어올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 망나니가 대체 어디에 있으려나.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13구역은 좁지 않다. 어쩌면 거리를 뒤지고 다니는 사이 케일럽이 먼저 집에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거리로 나섰다. 가만히 있기엔 좀이 쑤셨고, 불안인지 직감인지가 날뛰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베델은 추위를 많이 타는 것치곤 밤을 싫어하지 않았다. 밤산책을 즐기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찬공기를 맞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사람이 아직 나다니는 큰 길가는 건너뛰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있으려나? 그러나 찾지 못했다. 베델은 부지런히 걸었다. 조금 빠른 걸음이었다. 한참을 돌고 도는데, 이마에 물이 떨어졌다. 짜증 나는 밤이군. 방금 전까지 나아졌던 기분이 도로 불쾌감에 처박혔다. 속으로 혀를 차며 우산을 펼친다. 걸음은 늦춰지지 않았다. 계속 걸었다.

 빗방울은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케일럽은 집에 돌아왔을까? 알 수 없었다. CCTV 같은 걸 달아둔 것도 아니었으니 알 길이 없다. 제발 지금 내가 하는 짓이 헛짓이었으면 좋겠는데. 케일럽이 우산을 가지고 나가진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그는 도끼는 곧잘 들고 다녔지만 그 외엔 대체로 가벼운 차림이었다. 기껏해야 품속의 수첩 정도가 소지품일 것이다. 지갑은 당연했고.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돌아가야 하나?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가로등 불빛 끄트머리가 겨우 닿는 가게였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 닫힌 셔터에 몸을 기대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저거군. 눈을 가늘게 뜨던 베델이 걸음을 재촉해 그 앞으로 갔다.

 “허.”

 케일럽의 꼴은 가관이었다. 한쪽 팔은 어디다 갖다 버린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래엔 고인 피가 빗물에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비린내와 피비린내가 섞여 어룽졌다. 우산을 기울이며 내려다보면 그 남자가 느릿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피곤에 절어보이는 녹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여기서 궁상이야?”
 “…비가 오길래.”
 “되도 않는 소릴.”

 황당한 투가 흘러나갔을 것이다. 케일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웃긴 뭘 웃어. 베델은 마음이 삐죽해지는 걸 누르면서 손을 내밀었다. 케일럽이 멀쩡한 한쪽 팔을 들어 잡고 몸을 일으켰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면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짜증이 치솟는데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없었다. 케일럽은 지쳐보였고, 다쳤고, 피곤해보였다. 물론 짜증을 내려면 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본래는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당초 이렇게 나오는 건 베델에게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기껏해야 임시 동거인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그보다 이전엔 이용하기 위해 손을 잡았고. 그런데 언제부터 마음이 물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다 이 남자 탓이었다.

 “집으로 가자.”

 베델은 짜증내는 대신 그렇게 말했다. 힘없는 목소리가 그러자고 대답한다. 천천히 걸어 골목을 나선다. 비는 점점 굵어졌고, 피비린내는 서늘한 밤공기에 섞여 일렁였다. 케일럽의 팔이야 미카즈키 덕에 수복될 것이었다. 다른 상처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일단 벗겨놓고 좀 살펴보기라도 할까? 어울리지 않는 짓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베델은 변했다. 냉소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여자는 텅 비어있던 울타리에 케일럽 미카즈키를 들이고 말았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들어온 남자를 내쫓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중증이군. 속으로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내일 아침 식사는 내가 차릴까. 지난번에 베델의 음식을 먹고 한참을 침묵하던 케일럽이 식사는 자기가 차리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속으로 실소했다. 어디 맛 좀 보라지. 작은 심술을 계획하며 걷는다.

 새벽이 깊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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