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는 무사히 끝났다. 처음에야 엉뚱한 일에 휘말렸다지만, 그게 해결되고 난 다음에는 평화로웠다. 호수를 낀 펜션에서의 일주일은 지나칠 정도로 평온했고, 휘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캠프지를 떠나 온주마을로 돌아오는 길을 운전하는 이주윤의 거침없는 드라이브에 속이 뒤집힐 뻔했지만, 그 정도는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휘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와의 대화였다. 휘영의 어머니는 만신 김은주였고, 그녀에게 캠프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다. 휘영은 어머니의 방에서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하다 나왔다. 방 밖으로 나오니 여름 햇살이 따끈했다. 아직 7월이 아니었다. 여름이라지만 한창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햇살은 따끈한 정도였다. 따끔해질 때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아있었다.


 초여름. 휘영은 이 계절을 좋아했다. 봄은 비가 너무 많이 왔고, 한여름은 너무 더웠다. 가을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변덕스러웠고, 겨울은 너무 추웠다. 초여름 날씨는 따뜻해서 좋았다. 장마가 오기 전까지의 계절을 사랑했다.


 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한참이나 햇볕을 쬐고 있던 휘영은 곧 냉큼 마루에서 내려왔다. 신발을 주워 신고, 한쪽에 벗어놨던 밀짚모자를 챙겨 썼다. 휘영은 천천히 걸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바른 자세였다. 등은 꼿꼿이 펴고, 고개를 당겨 들고, 걸음걸이는 십일 자였다. 2년 전까지는 팔자걸음에 약간 구부정했던 자세였던 것을 떠올리면 꽤 달라진 자세였다. 물론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아이의 걸음걸이에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휘영은 어른들보다는 또래의 아이들과 놀기 바빴고, 또래의 아이들은 휘영이 어떻게 걷든 신경 쓰는 아이가 없었던 탓이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열병을 앓은 이후 휘영은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장난을 좋아하긴 했지만, 유약했던 아이였다. 지금의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변화는 빠르기 마련이었으니 그 또한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2년 전까지의 휘영은 나이에 비해 조숙했고, 이제야 그 또래로 보인다는 말이 있었다. 누군가 휘영에게 변했다고 말한다면 휘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터였다. 그 특유의 같잖다는 기색으로 그건 네가 날 몰라서 그렇지, 하고 대답하고 말게 분명했다. 물론, 그걸 묻는 사람은 없었다.


 휘영은 집을 나서서 서낭당 앞까지 왔다. 마을 어귀에 있는 서낭당은 마을 어른들이 치워놨는지 깨끗했다. 휘영은 서낭당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곧 신목으로 다가섰다. 900년은 족히 살았다는 회화나무는 커다랬다. 오색 천이 매달려 나풀대는 회화나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휘영은 곧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이 보면 불경하다며 혼을 낼 터였지만, 들키지 않으면 됐다. 휘영은 신목 위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하는 일도 없고, 낮잠을 자는 것도 아니면서 곧잘 올라갔다. 신목에 올라가 그 굵은 나뭇가지와 기둥에 기대앉아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다만 오래 앉아있다 보면 엉덩이가 배기긴 했다. 휘영은 종종 방석을 가져다 놓을까 생각했지만,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다.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마음에 드는 방석도 없었던 탓이다.


 신목의 굵은 가지 위에 올라앉은 휘영은 물끄러미 온주마을을 봤다. 신목은 크게 자랐고, 휘영이 주로 올라앉은 자리에서는 마을이 잘 보였다. 조그만 마을을 보고 있다면 흐름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할 흐름이었다. 영적인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휘영은 만신의 아들이었고, 만신의 아들이라서인지 아니면 그것과 별개로 타고나길 영안이 트여있었는지는 몰라도 휘영은 그런 것들이 익숙했다. 날 때부터 봐온 것들이었다. 익숙하지 않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치연이나 연선이도 영안이 트여있었다지만, 그 애들은 마을의 흐름까지는 완전히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이런 류는 가까이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으니까. 휘영은 가까이하지 않으려야 그럴 수가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으니 어쩔 수가 있나. 물론 휘영은 도망칠 생각 따위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좋지 않은데. 휘영의 시선은 마을 저편을 향하고 있었다. 아득하게 먼 곳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휘영이 보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영기가 불안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예상하는 것은 있었다. 저승의 아가리가 열리는 것.


 신저리는 지형적으로 신이 고이기에 적합한 땅이었고, 그래서 유난히 귀기가 짙었다. 애당초 사람이 살기에는 좋지 않은 땅이었다. 그런데도 마을이 있고, 그들이 무사히 살아가는 것은 서낭신이 그들을 지키고 있는 탓이었다.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은 그들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신저리 밑바닥에 있는 저승의 아가리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낭신은 그것이 열리지 않도록 힘을 썼다지만, 글쎄.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머지않아 열리고 말 것이다. 그건 곤란했다. 어른들은 둘째치고, 아직 약한 아이들은 그것의 영향을 짙게 받고 말 터였으니까. 아까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에서도 그 문제가 언급됐었다. 우선은 지켜보는 거로 했지만, 어찌 될지는 몰랐다. 휘영은 신목 기둥에 기댄 채로 가만히 마을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최선이었다.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으므로. 대신 휘영은 신목에 기댄 채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 걸려 나온 것은 까맣고 동그란 유리구슬이었다. 아니 유리구슬 같은 것이었다. 캠프지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내내 가지고만 있던 그것은 원념의 덩어리였다. 신물을 불태워 정화했지만, 그래도 남아 사라지지 않은 원념. 원념은 끈질겼다.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버린다면 분명 뒤탈이 있을 터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휘영은 손바닥 안에 원념의 구슬을 두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니에게 가져가 봐야 처리하는 데에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원리원칙을 따지는 사람이었으니 분명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휘영은 손바닥 안의 구슬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좀 더 간편한 방법이 있었다. 그건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고, 휘영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들킨다면 어마무지하게 잔소리를 듣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었다. 가엾지 않은가. 휘영이 툴툴대긴 했지만, 휘영은 캠프지에서 만난 그들이 가여웠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가여웠다. 그래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어. 할 수 있는 일을 할 밖에.


 휘영은 구슬을 한번 쥐었다가 그대로 입안에 집어넣었다. 혀끝에 닿은 구슬이 달콤하고 진득하게 녹아내렸다. 씁쓸하기도 했다. 슬픔의 맛이었다. 휘영은 그걸 뱉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원념과 슬픔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멍청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미련한 짓인 걸 알면서도 휘영은 삼키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왔던 것처럼 조금 손해 보는 일은 익숙했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마을을 다시 봤다. 영기와 귀기가 뒤엉켜 고여있는 마을을 가만히 보다가 신목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머지않아 저승의 아가리가 열린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게끔 자신이 잘 지켜볼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니 아직은 열살의 신휘영으로서의 삶을 즐기도록 하자. 휘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밀짚모자를 고쳐 썼다. 저 길 앞에 친구들이 보였다. 지금은 놀아야 할 때였다.






기묘 1.5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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