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로파 러닝 중 녹턴이 래브라도라이트를 킬 한다면~이라는 내용의 if입니다.




 이 게임의 주최는 신이었다. 자신을 하니라고 지칭하며 하찮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든 것은 절대자인 신. 천진난만하게 말하며 운명을 농락하는 존재. 그리고 녹턴은 그 신에게 종속되어 억지로 심판자를 맡았다. 이미 반은 인간이 아닌 몸이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신과 인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자로서 게임을 감독하는 감시역도 함께 맡았다. 물론 신과 인간 사이에서 치우치지 않은 입장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신이 시킨 일이었으니, 녹턴은 신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녹턴의 생각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신의 뜻이 곧 녹턴의 행동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완전히 생각마저 지배당한 꼭두각시는 아니었다. 녹턴은 나름대로 자신의 자주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때때로는 신의 뜻에 배반하고 싶어 했다. 오래지 않아 그 명을 받들 수밖에 없었다지만, 우선은 그랬다. 기본적으로 녹턴은 ‘중립자’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신의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선택받은 자들이 말을 잘 들어줬을 때의 이야기였다.


 “갑자기 덤비는 기는 예의 없는 기라고 안 배웠나?”


 가볍게 말하며 발을 들어 배를 걷어찼다. 큭 소리와 함께 상대가 뒤로 밀려났다. 손속을 두지 않고 세게 찬 탓이었다. 아따, 귀찮구먼. 녹턴은 쯧쯧 혀를 차며 뺨을 간질이는 긴 분홍빛 머리칼을 제 귀 뒤로 넘겼다. 콧잔등 위에 자리한 모노클 너머 레몬색 눈이 상대를 시큰둥한 기색으로 응시했다.


 “아아, 그랬던가요~?”


 세게 걷어차였음에도 상대는, 남자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어느새 꺼낸 채찍을 손에 쥔 것을 보며 녹턴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래브라도라이트. 보석의 이름과 지배의 속성을 가진 남자였다. 지배라는 속성에 맞게 오만한 남자는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꽤 거물의 마물을 상대하는 걸 발견했고, 그걸 도와줬는데 합은 잘 맞았지만, 인간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던 터였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멸망한 세계의 끝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지만.


 “그랬던가요는 무신 그랬던가요. 그리고 내는 참여자가 아닌디. 모르나?”

 “그럴 리가요. 알고 덤빈 거랍니다?”


 눈을 레이스로 가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웃는 낯짝이 썩 거슬렸다. 그래. 모르고 덤볐을 리는 없다. 래브라도라이트는 어딘가 여우 같은, 뱀 같은 기질을 가진 남자였다. 그 앞에서 대놓고 감시자이며 심판자라고 얘기했는데 그걸 못 들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덤빈 까닭은 아마 흥미본위의 목적일 것이 다분했다.


 흠. 녹턴은 물끄러미 래브라도라이트를 보다가 붉은 대낫을 고쳐 쥐었다. 걸어온 싸움을 피하진 않았다. 마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받아주는 쪽이었다. 선택받은 자와 싸워본 적이 언제더라. 마지막으로 싸운 것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낫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와라, 또라이.”

 “네, 핑크씨.”


 뭐가 그리 좋은지, 아니면 얼굴에 붙은 게 웃음인지 래브라도라이트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의 채찍이 날아왔다. 녹턴은 낫 머리로 그것을 쳐내고 빠르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래브라도라이트는 나이프를 꺼냈다. 은빛 나이프가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녹턴은 낫을 휘둘렀다. 나이프와 낫이 부딪히고, 채찍이 낫을 휘감아 당겼다. 낫은 호선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몇 번의 접전이 이어졌다.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 처음은 아닌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손속이 없고 가차 없었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다면 목에 나이프가 꽂혔을지도 모른다. 만만히 봐선 안 될 상대였다. 녹턴은 낫을 크게 휘두르고, 갑작스레 몸을 낮추며 래브라도라이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래브라도라이트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웃으며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녹턴은 찔러오는 그 나이프를 왼손으로 낚아채 잡았다. 날카로운 날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손목을 적셨다. 하얗고 긴 옷소매가 검게 물들었다. 핏방울이 날리기 전에 녹턴은 나이프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녹턴이 돌연 낫을 세게 쥐었다. 낫이 래브라도라이트의 등에 꽂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꽂힌 자리에서 피는 새지 않았다. 래브라도라이트가 컥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녹턴은 제 손바닥에 꽂힌 나이프를 모래밭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는 낫을 거두고 비틀거리는 래브라도라이트의 가슴을 발로 차 넘어트렸다. 모래 위로 번지는 피는 없었다. 그러나 래브라도라이트는 숨을 헐떡였다. 낫은 분명 등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피부는 베지 않았다. 낫이 베어낸 것은 그 피부 안쪽, 폐. 폐는 베인 자리서부터 꿀렁꿀렁 피가 차오르고 있을 것이다.


 녹턴은 넘어트린 래브라도라이트의 가슴을 짓밟았다. 낮은 굽이라고는 하지만 구둣발이 가슴을 짓밟자 래브라도라이트는 희미한 신음을 뱉었다. 숨을 헐떡이며 찌푸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녹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바로 죽진 않을 기다. 심장은 피했응께.”

 “편리, 한…능력, 이네요.”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래브라도라이트가 말했다. 일그러졌지만 불쾌해 보이진 않는다. 갈라진 폐 안쪽으로 피가 차올라 숨이 막힐 터였다. 이대로 두면 래브라도라이트는 자신의 피에 익사할 것이다. 폐가 온통 자신의 피에 젖은 채로, 기능을 잃은 폐는 호흡하지 못한다. 한 번에 죽이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녹턴의 능력은 베는 것이었고, 폐가 아니라 심장을 노렸다면 단번에 보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목을 베었어도 그랬으리라.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녹턴이 취한 방식은 꽤나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다. 어떤 이야기에서 익사는 신비롭고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런 사이코 로맨스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익사시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의 녹턴이 수도 없이 많이 취했던 방식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살인에 젖어 더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 뇌가 타인을 더욱 괴롭게 죽음에 이르게 하도록 지시했다. 인간의 죽음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것은 선택받은 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녹턴도 그랬다. 인간의 목숨을 쉽게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서도, 녹턴은 살인하지 않았다. 멸망의 날이 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막상 살인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거침없었다. 기묘한 쾌락이 있었다. 강렬하고 질긴, 동시에 여린 것이 손아귀에서 부스러져 가는 것이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미쳐가는 단계였다. 그리고 동시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야기를 쓸 때, 참고할 수 있겠다고. 보다 생생한 반응을 써 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녹턴은 살육에 미쳐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목숨을 취하지 못했을 테니까.


 녹턴은 아주 오랜만에 그때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발아래서 래브라도라이트가 죽어가고 있다. 오만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익사 당하길 기다리고 있다. 녹턴은 다친 손의 고통은 이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기분이 어떻노?”

 “최, 악…이네요.”


 그러나 그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숨이 막혀 생리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도 그는 웃고 있었다. 녹턴은 하! 하고 짧게 웃었다. 래브라도라이트의 가슴을 밟은 발로 꾸욱 지분댔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힘없이 늘어진 래브라도라이트의 손을 나이프에 베인 손으로 잡았다. 쥐었다가 깍지를 꼈다. 상처에선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녹턴의 검은 피가, 이미 인간이 아닌 자의 피가 래브라도라이트의 손바닥을 타고 손목으로 흘러내렸다. 녹턴은 다른 손으로 낫을 쥐고 래브라도라이트의 목 아래에 날카로운 끄트머리를 가져다 댔다.


 “니랑 붙은 거, 썩 재밌었다.”


 내가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래브라도라이트는 봤을까? 녹턴의 피가 검디 검다는 것을. 인간의 피가 아니라는 것을. 마물의 피라는 것을. 반은 마물이 되어버린 존재의 피라는 것을. 알까? 아니면 모르고 있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녹턴의 가슴 속에는 기묘한 흥분이 고였다. 이대로 래브라도라이트를 찢어발기고 싶은 폭력적인 충동과 함께,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는 대조적인 감상이 뒤섞였다. 어느 쪽이고 래브라도라이트가 여기서 죽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살릴 방도도 없다. 살릴 생각도 없고. 그러니 어느 쪽을 선택할까. 녹턴은 깍지를 껴 맞잡은 손을 쥐고 끌어당기며 동시에 고개를 내렸다. 래브라도라이트의 희게 질린 손등에 입술을 내렸다. 가볍게 쪽 소리가 났다. 죽을 자에게 선사하는 인사였다. 래브라도라이트의 숨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거의 끝이었다. 녹턴은 가만히 지켜봤다. 그의 가슴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심장이 뛰지 않을 때까지. 맞잡은 손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갈 때까지.


 심판자이자 중립자, 그리고 반마물인 녹턴의 두번째 멸망, 첫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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