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걱정 안 돼?”
이시우의 물음에 밤케이크를 조각내던 태지언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공부 얘기를 하던 차였으니, 수능에 대한 얘기일 것이었다. 태지언이 대답없이 조각낸 케이크를 입에 넣으면 이시우가 연달아 종알댔다.
“보고 있으면 담도 커. 면허시험 때도 그랬잖아.”
케이크 위에 올라간 보늬밤은 달았지만 과하지 않았다. 딱 적당하게 맛있었다. 조만간에 밤을 사다가 만들어볼까 생각한 태지언이 심상하게 대답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거 없어. 걱정하는 것보다 준비에 최선을 다 하면 돼.”
“…그러니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이시우는 태지언이 신기했다. 대단한 미인이지만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없는 한 살 연상 친구는 만난 이래로 내내 잔잔한 호수 같았다. 아니,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은 겨울의 눈 내린 평원 같기도 했다. 그게 그가 냉랭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태지언은 냉랭하다기엔 친절했고, 상냥하다기엔 건조했다. 사람을 대할 때 로봇 같지는 않았으되 늘 같은 태도였다. 곁에 다가서기 어려웠고, 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듯도 했다. 물론 어렵사리 파고들어 친구가 되어보니 태지언이 사람을 밀어낸다기보단 그저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게 더 낫다는 뜻은 아니었다. 차라리 밀어낸다면 오히려 다가설 수 있겠으나 관심이 없다면 타인의 접근 따위는 바위에 계란치기나 다름없다고 여겼으니까. 적어도 이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말수가 적었으니, 운전면허학원에서도 태지언에게 관심이 있던 사람은 남녀를 막론했으나 그 중 그의 눈길을 받은 건 이시우가 전부였다. 이시우는 태어나서 이렇게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은 태지언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와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근데 그러면 수능 전까지는 애인도 잘 안 만나겠네.”
이시우가 정말 놀랐던 건 태지언에게 애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태지언이 드물게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좋아하는 애인이라니. 이시우는 남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지 말자는 주의였지만 태지언의 연애 이야기는 궁금했다. 태지언은 애인 얘기를 할 때만큼은 겨울이 아니라 봄에 가까웠으니까. 그렇지만 무려 수능을 앞두고 있는데 애인을 만나겠어? 있던 애인이랑도 헤어지는 게 수능이었다.
“자제는 하자고 얘기했지만 못 만날 정도는 아냐.”
태지언은 부드러운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주에도 보기로 했어.”
“…그럼 공부는 언제 해?”
“평소에 해.”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자신이 넘친다고 해야할지. 이시우는 태연하게 말하는 친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공부해도 걱정되는 게 수능인데!
“진짜 대단해….”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태지언은 태연하게 말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에 이시우를 봤다.
“수능 끝나고 시간 있어?”
“수능은 형이 보는 건데 형이 괜찮으면 괜찮지?”
“선우 씨가 같이 식사하자셔.”
“…형 애인이?”
이시우는 얼떨떨했다. 태지언의 애인이 궁금하기도 했고 순수하게 사람으로서의 관심도 있었지만…, 이렇게 실체화된 약속을 잡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시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모금쯤 꿀꺽꿀꺽 삼켰다.
“와…. 갑자기 떨려. 진짜?”
“응. 진짜. 안 되겠어?”
“아니! 아니, 완전 오케이지!”
“그럼 약속은 그때가서 잡자.”
태지언은 다음주에 영화 보러 가자는 투로 태연하게 말했지만 이시우는 무슨 연예인 사인회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벌써 기대된다….”
이시우를 물끄러미 보던 태지언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시우의 말처럼 태지언도 기대됐다. 선우 씨에게도 얘기해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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